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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메리카 vs 동아시아] 트럼프식 접근이 美 외교 전통에서 예외는 아니다

Jacob, Kim 2019. 1. 15. 00:02







2019년 1월 14일자





美 외교정책 20여년 주도한 '세계 문제 적극 개입' 주장 약화
트럼프는 우선 순위에 따른 '선별적 개입'을 지지하는 입장




[기사 전문]




작년 12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주둔 미군 2000명을 빠른 시일 내에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에 대한 반대 표시로 매티스 국방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그의 사임을 둘러싼 논란이 격하게 전개되자 트럼프는 패트릭 섀너핸 부장관을 장관 직무대행으로 전격 임명하고 12월 31일 자로 매티스 장관을 해임했다. 이후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미국의 향후 세계 전략을 둘러싼 대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 문제에 문외한인 트럼프 대통령의 무책임한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대하던 전략 전문가 매티스 장관이 해임당했으니, 앞으로 트럼프의 잘못된 정책을 막을 방법이 어디 있겠느냐는 탄식과 함께 트럼프에 대한 일방적 비난이 논쟁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트럼프가 세계의 지도국으로서 미국이 담당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포기한 결과, 세계는 불안정과 혼란에 빠질 것이며, 동맹국들은 앞으로 미국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 논법이자 편파적인 분석이며 현실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미국이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클린턴-부시-오바마로 이어지는 지난 24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을 주도했던, 소위 기득권(establishment) 세력은 좌우 혹은 민주·공화당과 관계없이 거의 모두가 적극적인 국제적 개입주의자들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 오바마 행정부의 글로벌리즘은 모두 미국이 세계의 정치 및 경제에 깊숙이 개입해야 하며 세계를 미국과 닮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책을 양산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악당들을 쳐부수어야 하고, 악당들이 물러난 빈자리는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로 채워져야 한다고 이들이 주장했다. 미국이 자유주의적 패권(liberal hegemon)으로서 세계 문제에 적극 개입할 때, 세계와 미국은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은 미국의 외교 전통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미국의 외교 전통은 오히려 고립주의에 더 가까웠고, 미국이 국제 문제에 개입하더라도 그것은 선별적이고 임시적인 것이어야 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국제정치 학계는 자유주의적 패권주의를 이룰 수 없는 환상이며, 의도는 좋을지 모르지만 미국을 지옥과 같은 곳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 것이라며 비판했다. 존 미어샤이머, 스티븐 월트, 로버트 캐플런 등 미국의 정상급 국제정치 학자들이 자유주의적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트럼프의 세계관과 국제 행동은 근거 없는 독선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제정치학계에 면면히 존재하는 더욱 큰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외교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의 국제적 개입주의는 유럽과 중동을 중시하며 러시아를 아직도 미국의 주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보기에 트럼프의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정책, 러시아 및 중동 정책, 특히 최근 시리아 철군 결정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러시아가 호시탐탐 노리는 중동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트럼프가 세계 지도력의 책무를 거부했고 그 결과, 세상은 다시 정글로 돌아갈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세계 전략이 의존하는 국제정치학 이론들은 무조건 고립주의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미국이 예외적으로 막강한 나라이지만 한계가 있다고 보며, 세상의 모든 악을 선으로 바꿀 능력은 없다고 본다. 힘을 쓰기보다 자제하는 것이 더 좋은 대안이며 우선순위에 따라 선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 외교 기득권 세력의 입장만을 충실히 대변하는 주류 언론의 트럼프 비판에 흥분하기보다, 격렬하게 진행 중인 논쟁의 추이를 냉정하게 관찰·분석해서 대비책을 강구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춘근 정치학 박사·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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