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일자
[칼럼 전문]
대선 前 탄핵 위기 처한 트럼프
한국에도 민주주의 논란 격화
동맹의 국내정치 영향 막아야
미국 정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미 부유층과 빈곤층, 젊은층과 노년층, 그리고 보수와 진보 간 분열이 극심하지만, 이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 남용 혐의를 조사하는 극적인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물론 한국인들에게 이 같은 일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난 2017년 현직 대통령이 탄핵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 후 230여 년의 역사가 지나는 동안 미국에서는 오직 2번 대통령 탄핵 시도가 있었을 뿐이고, 그나마 실제 탄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현재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대통령 탄핵 조사권이 있고,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탄핵 결정권이 있다. 과거 대통령 탄핵 추진 때마다 상원이 반대한 덕분에 탄핵 위기에 몰렸던 대통령들은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과거와 유사하게 진행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신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에 대한 수사를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에 대한 대가로 미국의 군사 지원 문제를 레버리지로 삼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2020 대선에서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있는 민주당 유력주자인 바이든 전 부통령을 겨냥한 시도인 게 분명하다. 녹취록에 드러난 대화는 마피아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다. 우크라이나의 신임 대통령이 미국 무기를 더 구매하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부탁이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신임 검찰총장이 헌터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민주당은 충격을 받았고, 탄핵에 유보적이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임기를 1년여 남겨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탄핵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탄핵안이 상원에서 실제로 가결될 가능성은 작다. 대선 국면에서 누구에게 유리할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한국이 수십 년간 정치 분열 속에서 시위 사태를 겪고 대통령 탄핵까지 경험한 것처럼, 미국도 1860년대 노예해방에 따른 남북전쟁이라는 유혈 내전을 거친 뒤에도 유사한 분열상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을 최우선에 놓는 법치주의 정치 실현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다. 한국 사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 및 수감 이후에도 전진했듯이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조치가 진행되더라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및 미국은 국가 시스템이 탄탄해지고 민주주의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은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 투표 행위와 법치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자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이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혼란과 결함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와 전제주의자들이 만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능력과 영향력을 지닌 체제인 것이다.
탄핵으로 인해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국제 현안 쪽으로 눈을 돌릴 우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상징적 의미 외엔 아무런 내용이 없는 회동을 세 차례나 가진 바 있다.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그러한 행보를 더 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란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이 외교적 협상으로 가시화할지, 아니면 군사적 대치로 나타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유리한 국면 조성용으로 전쟁을 개시, 애국심을 고취할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정적인 재선 고지 확보를 위해 어떤 일을 벌일지는 완전히 예측불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으로 백악관에서 쫓겨날지, 재선에 성공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현재 하원에서 진행되는 대통령 탄핵 조사는 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미국인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이다. 민주주의가 200년 이상 지속된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낯설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민주사회의 본질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만큼 민주주의를 스스로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미국 국민 모두의 책무다.
미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의 이런 상황이 어디에 어떤 ‘나비 효과’를 일으킬지 예상하기 힘들다. ‘정치는 해안선에서 끝난다’던 과거와 달리 외교·안보 정책도 국내정치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교롭게도 한국 역시 국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복잡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한국 총선, 하반기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두 동맹국 모두 강한 민주주의 전통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도전을 극복해낼 것이고, 더 강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강력한 ‘민주주의 동맹’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사는 양국 국민 모두의 역사적 책임이다.
존 울프스털 前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확산담당 선임보좌관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00201033711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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