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기사, 사실은/안보강사란

[한겨레] [아침햇발] 지소미아, 방위비 분담금, 북-미 협상 / 고명섭

Jacob, Kim 2019. 12. 12. 21:08








2019년 12월 5일자





[칼럼 전문]





강사 : 고명섭 한겨레 논설위원 (시사안보칼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 문제는 지난 몇 달 동안 한-미 사이 최대의 외교 현안이었다. 두 문제 모두 워싱턴에서 우리를 향해 전례 없는 강도로 들이민 것이지만,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은 사안의 성격이 다르고 가리키는 방향도 다르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자적인 의제라면, 지소미아 문제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워싱턴 정가의 오래된 관심사다.

지소미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수립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같은 계통에 있다. 사드 배치 결정과 지소미아 체결이 이루어진 것은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7월과 11월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 핵 위협을 사드 배치의 직접적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사드 배치 후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중국이었고, 중국의 경제보복은 한국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안겼다. 지소미아 체결 때도 북한 핵 위협이 이유로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중국과 북한만 좋아할 것”이라며 뒤늦게 중국이 목표임을 털어놓았다. 지소미아는 사드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한다는 미국의 대외전략과 긴밀히 연결된 문제다. 북한 핵 위협은 중국 포위라는 미국의 속내를 감추는 데 필요한 빌미를 제공했을 뿐이다.


지소미아와 달리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트럼프 나름의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의제다. 트럼프가 최근 유세에서 “나는 세계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세계 경찰’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 속내를 가감 없이 보여준 말이다. 미국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동맹을 이대로 유지할 힘이 없으며, 할 수만 있다면 그 비용을 줄여 미국 경제를 살리는 데 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인 것이다. 반면에 사드나 지소미아는 트럼프의 큰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출간된 더그 웨드의 책 <트럼프의 백악관 안에서>는 트럼프가 취임 초기에 사드를 언급하며 “우리는 수십억 달러어치 미사일을 사서 부자 동맹들에게 줘 버렸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트럼프는 군사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전통적인 정책보다는 미-중 무역적자를 줄이는 중상주의적 대중 전략을 구사하는 쪽에 관심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드와 지소미아로 나타나는 미국의 정책 방향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는 트럼프의 정책 방향이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다는 사실이다. 워싱턴 정가는 이 두 정책 방향이 서로 힘겨루기하는 장이라고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두 힘이 북한 핵 문제에서도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대타협을 이뤄냄으로써 동아시아에서 미군 주둔 비용을 줄이고, 개방된 북한에 투자해 미국의 이익을 키운다는 장기 전망을 마음에 품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중국 포위를 노리는 워싱턴의 주류 세력은 트럼프의 이런 접근법에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워싱턴 주류에겐 북한 핵 문제는 중국을 포위하는 데 그럴듯한 명분과 핑계를 제공한다. 이 기득권 세력의 눈에 트럼프의 대북 유화정책은 미국의 대외전략을 망치는 순진한 정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풀리려면 미국 외교의 주류인 이 기득권 세력의 목소리를 눌러야 한다. 우리의 외교도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주류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북한의 과제도 다르지 않다. 트럼프가 재선 과정에서 거꾸러지거나 주류의 압박에 밀려 태도를 바꾼다면 과거에 그랬듯이 북-미 사이 모든 합의가 물거품으로 끝나는 상황을 다시 맞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현실이 되면 북한은 핵을 품은 채로 빈곤의 골짜기에 고립돼 적대감을 키우며 살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핵을 보유한 북한이 남한에 지속적인 위협으로 남아 있는 한, 분단 기득권 세력이 언제든 전면에 등장해 남북관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 북-미 협상 교착 장기화는 위험신호다. 남과 북 모두 이 상황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michae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97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