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6일자
[칼럼 전문]
강사 :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북한이 말한 12월 시한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 이 난장을 벌여 북한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전문가들조차 의아해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저러는 것인가.
ICBM 시험발사 등과 같은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하면 미국은 조만간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 할지도 모른다. 미 본토와 주한 미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고 나올 것이다. 우리는 엄청나게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만다. 요새 중국은 편집증에 걸린 듯하다. 한국의 안보 전문가를 만나면 매번 같은 얘기만 한다. 중거리 미사일이 배치되면 사드 보복은 우스운 것이었다고 느껴질 거라고.
미국은 지난 8월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했다. 500~5,500㎞의 사정거리를 갖는 지상 발사 중거리 미사일을 생산하지 않기로 구 소련과 맺은 조약이었다. 그 조약 때문에 지난 30여년 동안 중거리 미사일을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더 못 참겠다는 거다. 중국의 미사일 전력이 아태지역 미군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도 이에 대응하는 미사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을 착착 준비하고 있다. 북한이 도발하면 이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중국이 도발하면 그것을 명분으로 괌이나 오키나와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간다면 사실상 미국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격이 된다. 아태 지역에서 본격적인 군비 경쟁을 시작하여 중국의 체력을 소진시키고 싶었는데 갑자기 명분을 만들 수 없었다. 북한은 스스로를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것인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북한은 어떻게 될까. 장난 삼아 물장구를 좀 쳤는데 바가지로 물벼락을 맞는 격이 될 게 뻔하다. B-1, B-2 등 미군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북한이 미군의 중거리 미사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미군의 전략폭격기들이 괌에서 날아오려면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반면 지상 발사 미사일의 반응 시간은 극히 짧다. 수 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재고도 엄청나게 많이 쌓아 놓을 수 있다.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면 생존성도 뛰어나다.
지금 북한이 도모하려는 바는 냉전이 엄혹했던 1980년대 유럽에서 소련이 미국에 했던 것을 이 땅에서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북한의 전략가들은 생각해 봐야 한다. 냉전기 소련이 미국에 진저리를 쳤다는 얘기가 있다. 군비경쟁에 관한 한 미국은 독보적인 나라다. 제대로 된 위성 하나 없이 어떻게 미국과 대결하겠다는 건가. 사실상 눈에 안대를 하고 한 세대 전 무기를 갖고 덤빈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연말을 기점으로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간다면 한국의 군비 증강 추세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미 북한은 국방력 건설에 열심인 현 정부에 불만이 가득하다는데, 새로운 길을 가면 자신들에게 더 불리한 상황을 만드는 격이 된다. 현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국방비를 10조원 증액했다. 남은 2년 반 동안 10조원을 더 늘릴 예정이다. 이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하고 싶은가. 우리에게 여력은 많다.
한국 정부에 중재 역할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 북한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엉뚱한 길을 가다 중국에 버림받는 수가 있다. 중국도 미국의 견제로 힘든 상황이어서 그럴 개연성이 없지도 않다. 말은 안하지만 현 정부의 인내심도 바닥을 치고 있다. 내년에 선거도 있는데 안보에 허점을 보일 리 만무하지 않는가.
약자여서 감당해야 할 슬픔과 분노가 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불만을 난장을 벌여 풀려 하지는 말라. 도와주려는 사람이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야 한다. 핵무기가 있다고 세상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연말에는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 나갈 건지 그런 얘기를 좀 하자.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원문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2111376068017?did=NA&dtype=&dtypecode=&prnews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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