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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출범 70년’ 나토 중대기로>냉전 끝나자 길 잃은 나토… 재도약 꿈꾸지만 트럼프에 흔들

Jacob, Kim 2020. 1. 11. 00:04









2019년 12월 4일자





[기사 전문]





트럼프 “GDP 대비 4% 돼야”

동맹국에 방위비 인상 노골화

‘中 굴기’우려하며 단합 시도

사상 첫 ‘中 위협’보고서 채택

화웨이 보이콧 등 균열 커질듯





올해 출범 70주년을 맞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심각한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 소련이 붕괴해 적이 사라진 지 30년 가까이 돼 공산권의 부상을 막는다는 창설 목적은 냉전 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40년 동안 세계 최대 단일 동맹을 자랑하던 나토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증액 요구와 일방주의로 곳곳에서 파열음이 커진 뒤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3∼4일 영국 런던에서 진행되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은 중국 위협론으로 갈등 봉합을 시도했지만 화웨이 보이콧, 터키 문제에 대한 입장이 갈려 균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3일 AFP통신, 도이체벨레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방위비 지출 증가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회원국이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까지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GDP 대비 방위비 지출이 2%가 되지 않는 캐나다를 겨냥해 트럼프 대통령은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게 “1%도 안 내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더군다나 부자 나라들”이라며 “2%는 매우 낮다. 4%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분담금을 증액하지 않으면 통상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나토 회원국들은 국방 예산을 2024년까지 각국 GDP 대비 2% 수준으로 올리자고 합의한 바 있지만, 올해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한 나라는 9개국뿐이다. 20개국이 아직 GDP의 2%를 나토에 분담하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4% 증액’ 주장은 각국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동의 적이었던 소련의 해체로 대항마를 잃은 나토는 중국의 군사 굴기를 우려하며 단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세계 2위 규모의 중국 방위 예산과 미국 및 유럽에 닿을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배치 등을 거론한 뒤 “나토가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면서도 “새로운 적을 만드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나토 29개 회원국 정상들은 4일 공식 회의가 끝나고 발표될 성명에 “우리는 중국의 커지는 영향력과 국제 정책이 우리가 동맹으로서 함께 대처할 필요가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나토 정상 선언문에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내용이 담기기는 처음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회원국 간 균열은 계속될 전망이다. 터키가 가상적국인 러시아로부터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을 도입한 사실은 나토 회원국 간 갈등을 악화시킨 원인이 됐다. 미군이 쿠르드족을 버리고 시리아 북동부에서 철수 결정을 내릴 때도 동맹국 간 공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당시 “미군의 철수를 트위터로 알았다”며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미국이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라고 유럽국가들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점도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 나토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동맹 자체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유거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독일 시민의 55%는 나토에서 미국이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방어가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 용어 설명

나토 소사 :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소련과 미국 두 강대국 간 냉전 속에서 태어났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소련과 그 동맹국들이 형성한 바르샤바조약기구에 맞서 설립한 후 세계 최대 군사동맹체로서 역할을 확대해왔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공산권 붕괴 이후 중대 전환점을 맞은 나토의 역할은 축소의 길을 걸었다. 1999년 코소보전에 개입하고 2001년 미국 9·11테러 당시에는 회원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나머지 동맹국들이 지원하도록 의무화한 조항 5를 발동, 아프가니스탄전에 뛰어든 정도다. 이후 30년간 결속력을 잃고 군사동맹체로서의 목적도 상실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이념적·군사적 연대의 성격을 잃고 각국이 실리를 좇아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유정·김윤희 기자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20401070821339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