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통일과 현대의 독일

[국민일보] 70년 맞은 나토… 덩치 커졌지만 속으로 곪는다

Jacob, Kim 2020. 1. 11. 00:15







2019년 12월 21일자





[기사 전문]





북대서양조약기구 어제와 오늘





1945년 5월 구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하면서 나치 독일은 패망했다. 6년 동안 세계를 전쟁의 참화에 빠뜨렸던 아돌프 히틀러는 베를린 함락 직전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약체였던 구소련은 4년 동안 나치 독일과 혈전을 벌이며 정예군으로 거듭났다. 나치 독일이 패망할 무렵 유럽의 절반이 이미 구소련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있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진영은 구소련의 안보 위협을 민감하게 여겼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2차 대전 종전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46년 3월 미국 미주리주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발트해의 슈체친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유럽 대륙 전체에 걸쳐 철의 장막이 드리워졌다”고 말했다. 냉전의 상징적 시작점으로 꼽히는 ‘철의 장막’ 연설이다. 1948년 구소련이 베를린 봉쇄를 단행하며 양 진영의 대립은 격화됐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




미국은 공산주의 파도를 막기 위한 방파제로서 서유럽 국가 간 안보 동맹을 고안해냈다. 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10개국에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국가가 참여하는 형태로 1949년 출범했다. 1952년에는 그리스와 터키가 참가했고 1955년에는 당시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서독이 추가됐다. 1982년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독재 체제에서 탈피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스페인이 가입했다.

나토의 핵심은 나토 헌장 5조에 담겨 있는 집단안보 원칙이다. 나토 회원국 중 한 국가가 제3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구소련으로서는 서쪽을 향해 팽창을 시도할 경우, 서유럽 전체는 물론 미국과의 전면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구소련은 1955년 폴란드와 동독, 헝가리 등 공산권 동유럽 국가들을 규합해 나토를 본뜬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결성했다.

1990년대 들어 구소련이 붕괴하고 탈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나토의 명분이었던 구소련 견제는 사라졌다. 대척점에 있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냉전 종식과 함께 해체됐다. 하지만 나토는 위기관리와 협력 안보를 내세우며 국제분쟁에 적극 개입하는 ‘국제 경찰’ 역할을 떠맡았다. 1999년 나토군은 세르비아군의 코소보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세르비아에 폭격을 실시했다. 나토가 주권국가에 무력을 행사한 것은 창설 이래 처음이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개된 대(對)테러 전쟁에서 나토는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나토는 9·11 테러를 미국을 겨냥한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규정하고 나토 헌장 5조를 발동했다. 냉전 시절 단 한 차례도 적용되지 않았던 5조가 나토 창설 52년 만에 발동된 것이다. 2011년 중동 ‘아랍의 봄’ 사태 당시 나토군은 리비아 정부군에 대규모 공습을 가해 무아마르 알카다피 정권의 몰락에 기여했다.

몸집도 냉전 시절보다 커졌다.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던 동유럽 국가들이 냉전 종식 후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다퉈 가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토의 급속한 성장은 결국 러시아의 안보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등 친서방 노선을 채택하자 2014년 크림 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내 친러 반군을 지원하며 초강경 대응을 했다.




신(新)냉전 앞 분열 위기 빠진 나토

 



나토는 커진 덩치와 정반대로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구소련 해체 이후 전면전 위협에서 벗어난 나토 회원국들이 군비 지출을 줄이고 남는 예산을 경제에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토 회원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토록 권고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나라는 29개 회원국 중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나토 통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 GDP 2% 가이드라인을 지킨 나라는 미국과 불가리아, 그리스, 영국 등 9개국에 그쳤다. 초기 멤버인 서유럽 국가들일수록 저조했고 도리어 신규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다.

유럽 국가들이 방위비 지출을 아끼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이 ‘독박’을 쓰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지난해 기준 미국은 나토 전체 방위비의 70% 가까이를 떠맡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보 무임승차론’이 표현은 비록 과격해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시절 나토가 방위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패권주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나토는 사분오열된 상황이다. 독일은 발트해 가스관을 통해 천연가스를 직접 공급받을 수 있도록 러시아와 ‘노드스트림 2’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크림 반도 합병 때문에 제재를 받는데도 독·러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하면 유럽이 분열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터키도 나토의 골칫거리다. 터키는 미국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러시아에서 S-400 대공미사일을 도입해 논란을 일으켰다. 나토 창설 이후 회원국은 러시아산 무기를 구매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이게 깨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터키는 최근 미국의 동맹인 시리아 내 쿠르드족을 기습 공격하고 시리아 영토 내에서 러시아와 공동 군사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노골적인 친러 행보를 이유로 터키의 나토 회원국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터키의 지정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데다 난민 방파제 역할도 해주고 있어 나토에서 내쫓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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