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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60년 넘도록 시달려온 ‘주한미군 철수 공포’

Jacob, Kim 2020. 1. 11. 00:21







2019년 11월 30일자





[기사 전문]





중 견제 등 이유로 현실적 불가능







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주한미군 철수설이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 카드로 부각됐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시나리오를 일축했다. 현실적으로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은 떨어진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측불허의 정책 결정을 서슴지 않는 데다 한·미동맹이 과거에 비해 느슨해졌다는 평가까지 맞물리며 주한미군 철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미국 내 정치 상황과 군사전략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주한미군 역할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66년간 유지된 주둔 공약 




주한미군은 1953년 10월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주둔하고 있다. 이 조약에는 한·미 양국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한·미) 상호적 합의에 의해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grant)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accept)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한미군 규모는 국제정세에 따른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 북한의 군사 위협 등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됐다. 미군이 한반도에 처음 주둔한 시점은 1945년 9월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38선 이남에 7만7000명에 달하는 미군이 주둔했다가 49년에 철수했다. 주한미군 병력은 6·25전쟁 당시 32만5000명으로 가장 크게 늘었으며, 정전 이후 지속적으로 줄었다.

한·미는 2004년 10월 ‘2008년 말까지 3단계에 걸쳐 3만75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감축한다’고 합의하기도 했다.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하기 위한 미국의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2008년 4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방위력 약화 우려 등을 감안해 감축 계획을 백지화하고 2만8500명 수준을 유지키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한·미 안보협의회의(SCM)를 통해 여러 차례 재확인됐다. 지난 15일 서울에서 열린 SCM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현 안보 상황을 반영해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담겼다. 주한미군 규모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한·미 연합방위체제는 더욱 공고해졌으며 전력도 강화됐다는 게 한·미 양국 군 당국의 평가였다.




협상카드처럼 쓰인 주한미군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 철수론이 떠오른 것은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을 전후로 한 때였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얼마 안 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한미군은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조하며 선을 그었다.

최근 논란을 일으킨 주한미군 감축설은 미국의 정책 결정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주한미군은 지금 논의에서 빠져 있으며 미래의 협상을 봐야 한다”면서도 “언젠가 말하겠지만 군대(주한미군)를 철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제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한·미 양국 협의가 진행되던 때 나온 것이었다. 한국 정부와 논의를 거쳐 나온 발언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주한미군 철수설이 국내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됐다. 이에 앞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지난 19일 주한미군 감축 문제와 관련해 “나는 우리가 할지도, 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에 대해 예측이나 추측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감축설에 불을 지폈다.

미 국방부는 “즉각 기사를 취소하라고 요구한다”며 이례적으로 강하게 철수설 보도를 부인했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 중일 때마다 철수설이 흘러나온 상황을 우연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실제 미국이 ‘비용 부담만 큰 세계의 경찰’ 역할을 지양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대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

 



현재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한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 견제에 필요한 첨병인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데다 해외 주둔 미군을 용병으로 깎아내리는 결정을 해선 안 된다는 비판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10년간 미국산 무기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산 한국과의 관계 역시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군 관계자는 29일 “현재 주한미군 철수를 준비하는 것으로 볼 만한 미군의 움직임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최대 변수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꼽힌다. 어떤 카드를 꺼낼지 모르는 미친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는 압박을 높여 이득을 취하는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을 한국 정부에도 구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시리아 철군과 사우디아라비아 미군 주둔을 전격 결정하는 등 예상치 못한 군사전략을 잇달아 실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미 의회 승인 범위에서 감축할 수 있는 주한미군 규모는 6500명이다. 미국의 안보 정책과 관련 예산을 명시해 놓은 미 국방수권법은 주한미군 하한선을 2만2000명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주한미군 6000여명을 줄이더라도 대북 군사적 억지력에 큰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 해·공군과 정보자산 등이 중요한 것이지 주한미군 병력 규모 자체는 큰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공식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지나치게 우려해 미국의 방위비 대폭 증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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