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8일자
[칼럼 전문]
제재 무력화 작전인 ‘새로운 길’
경제라는 수비가 치명적 약점
단기 과시용, 일관성 없는 새 길
스스로 더 큰 위험, 혼란 빠질 뿐
북한의 ‘새로운 길’은 제재를 지속하며 변화를 기다리는 미국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한 작전이다.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서 처음 이 길을 언급하며 미국을 압박했지만 ‘하노이 노딜’이라는 참담한 결과만 얻었다. 영변 정도만 내어주고 효과 있는 제재를 다 풀려던 수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결정적 약점만 노출시킨 북한은 미국을 혼란스럽게 만들 작전이 필요했다. 작년 4월 김정은의 시정연설에서 일부 드러났고 연말의 당 전원회의 발언에서 구체화된 ‘새로운 길’이 그것이다.
이 작전에는 공격수(군사), 미드필더(외교), 수비수(경제)가 모두 등장한다. 핵심 공격수는 ‘새로운 전략무기’다. 이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김정은은 전략무기 개발을 ‘자주권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공세적 조치’라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은 더욱 강력한 전략무기를 선보일 것이므로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협상을 서둘러야 할 쪽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며 공세적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작전은 성공하기 어렵다. 우선 공격수와 미드필더의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다. 미드필더는 김정은이 중국과 러시아에서 빌려온 용병으로 구성됐다. 문제는 이들이 친(親)수비형, 반(反)공격형이라는 점이다. 감독이 공격수에게 골을 넣으라고 지시하면 용병은 이를 방해하거나 심지어 자살골을 넣겠다고 위협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예리한 공격을 감행하기 어렵다. 예리함이 지나치면 중·러가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 추가 제재에 동의할 수 있다. 한반도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이 두 국가는 북한을 관용으로만 대하기 어렵다.
이 작전의 치명적 결함은 수비인 경제에 있다. 김정은은 ‘정면돌파전에서 기본 전선은 경제 전선’이라며 발언 중 50% 가량을 경제에 할애했다. 북·미 대립의 장기화를 전망하며 ‘자력갱생으로 이를 돌파하자’고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매우 부실하다. 장기전에 단기 수비법을 택하고 있고 수비수 간에 조율도 없다. 용병이 수비를 돕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강력한 제재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책략과 선수도 없는 데다 감독은 수비의 기본도 알지 못하는 초보다.
정면돌파전은 장기전이라고 진단하지만 경제 운용은 단기 보여주기 식이다. 김정은은 산간 문화도시의 본보기로서 삼지연시, 온실채소 농장과 양묘장, 온천휴양지 건설을 중요한 업적으로 내세웠다. 그는 ‘인민에게 선진문명의 창조물을 선물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한 나라의 업적으로 삼기엔 딱할 만큼 미미한 성과다. 더욱이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대다수 주민에겐 그림 속 떡에 불과한 과시용 사업이다. 장기전을 위해선 자원의 낭비를 막아야 하지만 경제 운용은 그 반대다.
북·미 대립을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하며 ‘생산 잠재력을 총동원해 정면돌파 하자’는 외침 역시 과시용이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견고하다며 대내외에 선전하려는 목적이다. 그 결과 외화 소진 속도가 빨라져 장기전은 엄두내기 어렵다. 김정은이 이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일수록 기관과 기업은 목표 생산량 달성을 위해 무리할 수밖에 없다. 주민생활에 필요한 소비품을 계속 공급하기 위해선 원부자재 수입을 줄여선 안된다. 중화학 제품을 생산하려면 석유와 장비, 부품을 밀수해야 한다. 2014년 북한의 무역의존도는 52%로서 전 세계 평균보다 불과 8% 포인트 낮은 수준이었다. 이런 경제에게 자력갱생은 죽음으로의 초대이다.
일관성을 상실한 정책은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김정은 시대 도입된 농업의 포전(圃田)담당제(일정한 경작용 논밭을 소규모 단위로 운용)나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는 자본주의로의 체제이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방향은 맞다. 이전처럼 정부가 이윤을 다 가져가지 않고 농민 혹은 기업과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관리를 강화하라’는 발언은 이 방향과 상충된다. 또 ‘전 인민적인 생산투쟁으로’ 계획 지표를 달성하라는 요구는 사회주의 경제에 반복됐던 실패를 답습하라는 말과 같다.
새로운 길은 정치적으로도 위험하다. 이 길로는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김정은이 신년사를 건너뛴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다신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과거 신년사를 스스로 부정하는 육성을 들려주기 싫었을 것이다. 내핍을 오랫동안 견뎌야 한다는 걸 주민들이 알게 되면 낙담은 물론 드센 반발마저 보일 수 있다.
새로운 길이 성공하는 유일한 경우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이 교란 작전에 현혹될 때다. 이에 속아 제재를 통한 비핵화 노력을 포기할 경우다. 그 결과 한국은 핵무장 혹은 핵 도입이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북한 핵에 의해 우리의 자유와 가치를 제약 받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정부는 평화경제라는 말의 성찬만 벌여선 안된다. 오히려 지금은 한·미 조율을 통한 북한 비핵화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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