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945/독일-폴란드 분리선

◆[톱데일리] 2018년 6월 29일자 톱데일리 기사 발췌+

Jacob, Kim 2018. 7. 1. 01:52






[ 톱데일리 기사 발췌 ] 2018년 6월 29일자




28일 오후 6시 43분쯤 강원도 철원군 북북동쪽 4㎞ 지역에서 규모 2.7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이날 오후 9시 3분께 충남 태안군 서격렬비도 북북서쪽 50㎞ 해상에서 규모 2.2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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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끊이지 않는 지진 소식에 온라인에서는 이른바 '불의 고리(Ring of Fire)'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불의 고리'는 세계 주요 지진대와 화산대 활동이 중첩된 지역인 환태평양 조산대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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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차대전사(11) 소련군, 중앙 돌파 개시(계속)





련군, 중앙군의 연약한 측면을 파고 들다



중앙군이 민스크 서쪽까지 퇴각해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적군과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소련군은 북방군 전선과 중앙군 전선에서 생겨나게 된 틈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29일). 소련군은 중앙군을 공격하는 동시에 양 집단군 사이에 생겨나게 된 연약한 측면을 공격해 북방군이 중앙군 전선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소련군은 북방군에 수 차례 공격을 감행해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 지역 독일군은 지난 2월과 3월에 걸친 후퇴와 반격으로 불안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는 소련군도 마찬가지로 전투가 계속되었던 중부 및 남부지역과 달리 전선이 고착된 상태로 담당 지역에서 오랜 기간 방어전을 치르었기에 독일군을 상대로 제대로 공세를 치루어 본 경험이 적었다는 점이 수세에 몰린 북방군에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직면한 독일군



한편, 중앙군이 백러시아 전역에서 초전에 붕괴되는 것을 겨우 겨우 막아내자(30일) 소련군은 남부집단군 북익으로 병력을 돌려 재차 공세를 가했다. 적군의 의도는 지난 북방군과 중앙군 전선 사이에서 생겨난 틈을 공격한 것과 같았다. 적군의 이번 공세는 남부집단군이 중앙군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로 인해 추가로 중앙군에 지원되기로 했던 지원 병력들은 중앙군을 지원하지 못하고 소련군이 북익에서 개시한 공세를 막기 위해 투입되어야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앙군과 남부집단군 사이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적군의 측면 압박을 단시일에 제거하지 못하게 됨을 의미했다. 주1)


이렇게 되자 독일군은 남쪽에서 벌어진 적군의 공세를 막으면서 중앙군 전선을 폴란드 동부-백러시아 국경 지대 사이에서 고착시켜야 한다는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부집단군이 하르코프 북익에서 강력한 방어를 펼쳐야 적군이 폴타바를 거쳐 드네프르강까지 진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주2) 이처럼 독일군이 당면한 위기에 여러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소련군도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적군은 민스크를 탈환하고 독일군을 서쪽으로 밀어부쳤으나 민스크 서쪽에서 방어를 강화하기 시작한 독일군을 포위하거나 섬멸에 이르게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주3)




소련군, 연합군에 북프랑스 지역에서 독일군 전선 돌파를 강력히 요구하다. 



소련군은 중앙군이 민스크 서쪽에서 전열을 재정비하는데 성공하면서 독일군이 전선 후방에서 반격 병력을 집결시켜 공격군의 측면을 때릴 것이라 판단했다. 주4) 소련은 연합국에 반복해서 북프랑스 어딘가에 빠른 시일 내로 독일군 전선 돌파를 강력히 요구했다. 영미연합군은 독일 본토에 전략폭격을 계속하는 가운데 18년 전반기 동안(18년 1~4월) 전진을 계속하여 이탈리아 로마(Rome)을 18년 6월 5일에 함락시켰지만 이 지역 독일군은 도시를 포기하고 퇴각한 뒤였다. 주5) 독일군은 퇴각 중에도 진격해오는 영미연합군에게 출혈을 강요하면서 구축되고 있었던 로마 북쪽의 또 다른 방어선으로 이동을 마무리했다.



영미연합군은 양군의 전황을 평가하면서 독일군이 백러시아 전역에서 병력을 잃느니 도시를 소련군에게 내주고 있다고 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주6) 그리고 독일군이 민스크 서쪽에서 응집력 있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기에 연합군은 소련군이 의도한 기동전을 통한 승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배 이상의 병력 우위를 독일군에게서 빼앗아와야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연합군 측에서 보기에 북프랑스에서 노르망디 상륙이라는 작전적 성공이 달성되더라도 엄청난 인명 손실을 떠안고 나서야 가능하게 되거나 아니면 작전 변경을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주3)




■ 주석(Comment)




주1) 원 2차대전사 - 1944년 7월 13일에 소련군이 개시한 르보프-산도미엘즈 공세로 남부지역 독일군은 중앙군을 지원하기 어려워졌다. 당시 독일군은 요제프 하르페 장군의 지휘 아래 강력하게 방어전을 펼쳤지만 중앙군 지원을 위한 병력 차출로 약화되어 있어서 독일군은 소련군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야 했다. 



주2) 원 2차대전사 - 남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은 그의 회고록에서 "적은 폴타바를 거쳐 드네프르강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고 기록했다.



주3) 가상 2차대전사 - 이 부분은 뒤집어보기가 없다. Wenck님의 지적처럼 만약 독일군이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했다 해도 이어질 소련군의 공격을 막을 병력이 독일에 있지 않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하면, 1944년 여름에 영미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하고 소련군은 바그라치온 작전으로 폴란드 동부와 루마니아 전선까지 독일군을 밀어내는데 성공하면서 이 시점부터 전세는 연합국 위주로 되어버렸다. 




주4) 원 2차대전사 - 소련군은 바그라치온 작전 개시를 검토한 사항 중에서 소련군이 남쪽에서 계속 진격하였을 경우에 전선의 측면이 길게 노출되어 중부집단군이 이 공세의 측면을 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5) 원 2차대전사 - 1944년 6월 4일에 연합군에 의해 로마가 함락되었다.  



주6) 원 2차대전사 - 1943년 8월 22일, 만슈타인은 그의 참모에게 "군을 잃느니 도시를 내주겠네" 라고 말했다. 하르코프는 최후의 시간을 맞이했고 8월 23일, 잘 알려진 대로 하르코프는 소련군에게 탈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