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0일자
美안보전문가 자이한, 저서 '셰일혁명과 미국없는 세계'서 주장
"수출·수입 의존 한국, 혼란 휩싸일 것…새로운 살길 찾아야"
[기사 전문]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시리아 주둔 미군의 전면 철수가 결정된 지 며칠 만에 이라크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방문해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없다. 미국은 세계의 호구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한국 등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응하지 않으면 주둔군 감축이나 철군 카드를 꺼내는 것도 서슴지 않을 기세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세계 주요 분쟁 지역에서도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의 이런 행보가 '워싱턴의 이단아'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외교술 때문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시각이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며 무지하고 위험한 분석이라고 지적한다. 유일 초강국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통령 개인이 장기적 국가 전략의 큰 틀을 흔들 수 없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국제 질서를 이끌어온 미국이 이처럼 과거 고립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인 세계 전략을 완전히 바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저명한 지정학·안보 전문가이면서 인구통계학과 글로벌 에너지 전략에도 능통한 피터 자이한은 이런 이론을 설파하는 대표적인 전략가다. 그는 국무부 출신이면서 글로벌 민간 정보기업인 '스트랫포'에서도 정세 분석 담당 부사장으로 일했다.
그는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김앤김북스)'에서 이제 세계 각국은 미국이 자발적으로 경찰 역할을 그만두고 물러난 혹독한 세상에서 각자도생하느라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고통은 경제적인 것에 외에 주요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까지 포함한다. 러시아와 유럽 국가 간 전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페르시아만 전쟁, 일본과 중국의 '유조선 전쟁' 가능성을 저자는 확신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이 국제 질서에서 당분간 손을 떼는 이유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끝났기 때문이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금환본위제'를 도입한 단순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며 미국은 부자가 되려고 이런 체제를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최대 안보 위협이었던 소련 제국을 무너뜨리고자 소련에 맞서는 안보 동맹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시장을 동맹국에 내준 게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자이한은 설명한다. 즉 소련이란 적을 제거하려고 동맹국을 돈으로 '매수'하는 수단으로 이런 체제를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나토 국가들과 일본,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네 마리 용 등은 물론 중국과 '적과의 동침'도 포함된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은 경제적 손해를 보면서 시장을 내줄 이유가 없고, 한국이나 유럽에 큰 비용을 들여 군대를 주둔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러시아는 다시는 소련 제국으로 돌아갈 수 없고, 중국 역시 미국과 맞섰던 소련급 'G2'는 절대 될 수 없다고 미국은 판단한다.
오히려 미국이 깔아놓은 '자유무역'의 판, 즉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가장 이득을 본 나라는 중국이며, 지금 미국에 도전하는 나라들도 다 이 시스템 아래에서 득을 봤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시작한 것, 유럽연합(EU) 동맹국과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가입국에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는 게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셰일혁명과 미국없는 세계
게다가 미국을 범접 불가능한 최대 산유국이자 에너지 순수출국 지위에 올린 '셰일 혁명'은 미국이 가장 많은 공을 들였었던 중동 지역에서 힘을 뺄 필요성을 완전히 없앴다. 해상에서 석유를 안전하게 운송하려고 막대한 해군력을 투입할 필요도 없게 됐다.
이런 미국의 세계 전략 변화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중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동북아시아 국가들이다.
안정적 원유 확보와 수송을 위해 세계 2위 해군력을 보유한 일본과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남아시아 주요 거점에서 해상전에 돌입하고 주변국들도 여기에 휩쓸리게 된다. 미국 없는 바다에선 원유를 확보해도 수송을 위해 해군력을 투입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에너지 순수입국이자 동북아에서 가장 군사력이 떨어지는 한국에게 가장 큰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경제난과 에너지난에 시달린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이 물러난 세계에서 일본은 미국 지배하에서 강요됐던 평화헌법 9조를 없애고 다시 과거 지역 맹주로서 역할을 찾으려 할 것이고, 중국 역시 일본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구한말과 같은 험난한 정세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
자이한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미국의 전후 계획에서 한국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면서 "미국이 한국에 신경 쓴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소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한국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이 손을 떼게 되면 한국의 끔찍한 지리적 여건은 다시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게 된다"면서 "한국은 뭍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상대인 중국과, 바다에서 한국보다 월등히 뛰어난 상대인 일본 사이에 끼어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은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과 원자재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세계질서가 무너지면 한국 전역이 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로 인한 충격과 불운은 그 어느 부문보다도 에너지 부문이 갑자기 참혹하게 겪게 된다"면서 "미국은 분명히 세계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모두가 새로운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원문보기: https://www.yna.co.kr/view/AKR20190129184900005?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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