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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北, 미사일 발사 준비로 신속, 단호한 대응 과시

Jacob, Kim 2019. 3. 8. 22:47








2019년 3월 7일자





하노이 회담 결렬로 트럼프에 대한 신뢰 포기한 듯
내년 미 대선까지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도





[기사 전문]





【서울=뉴시스】강영진 기자 =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이 빠르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뒤 일부 해체됐던 서해 발사장의 주요 시설물들이 빠르게 복구되고 있으며 평양시 인근 산음 미사일공장에서도 미사일을 운송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이 미사일 발사장을 다시 짓고 있다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북한의 강경 대응 움직임에 대해 경고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이 파국으로 이어질 지가 주목되는 상황에서 나온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재개 움직임은 북미간에 핵협상이 당분간 재개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적어도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다시 만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다.

당시 밝힌 '새로운 길'이 미사일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임을 이번에 행동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서해 발사장 시설을 복구하기 시작한 것은 하노이 회담 10여일 전부터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5일 국회보고에서 두가지 측면이 모두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렬에 대비해 발사 재개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회담 성공시 '멋있게' 폭파하려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생산 공장인 산음 기지에서도 움직임을 보였음을 감안하면 후자는 아닐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과정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상당한 성과를 기대하면서 회담에 임한 듯하다. 우리 정부조차 회담 결렬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음을 볼 때 김위원장은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특별대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스웨덴에서 3박4일 동안 함께 술도 마시고 폭넓게 의견교환을 한데 이어 비건 대표가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평양으로 날아가 실무협상을 하는 등의 과정에서 조짐이 좋다고 느꼈을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걸핏하면 "김정은 나의 친구"라면서 개인적 관계가 좋다고 강조한 것도 낙관하는데 한 몫 했을 듯 하다.




그런데 트럼프대통령은 김정은위원장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김위원장이 모욕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정도였다.

6일(현지시간) CNN 보도에 따르면 하노이 회담 이튿날인 2월 28일 회담을 끝낸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장에서 나가버리려 하자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김위원장의 메시지를 가지고 미국 측에 달려왔다고 한다. 회담에서 영변 핵단지의 폐기의 정의를 두고 벌인 논란에 대한 김위원장의 답변이었다. 이 답변을 미국이 거부하자 최선희는 다시 김위원장에게 달려갔고 영변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는 답변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협상을 계속하길 거부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몇 시간 뒤 워싱턴으로 떠나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애시당초 협상을 결렬시킬 작정으로 하노이에 왔었다고 판단하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이미 회담 전부터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차례 밝힌 것과, 뒤에 "서두르기 보다 옳은 해결책이 필요했다"고 결렬을 정당화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결렬에 기울어진 상태로 회담에 임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은 김위원장을 "나의 친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과 상충하는 것이다. 개인관계라면 배신감을 느낄 정도다. 특히 부족함없이 떠받들어지면서 성장한 끝에 절대권력을 승계하고 정적을 숙청하면서 권력을 다지는데 성공한, 김위원장으로선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가능성이 있다.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는 무오류(無誤謬)의 수령 권위가 훼손된 점도 김위원장의 화를 돋을 것이다.

트럼프 역시 아버지에게 가업을 물려받아 젊은 시절부터 승승장구해온 사업가로서 자신의 처신이 김위원장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을 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제재로 인해 경제난에 몰린 북한을 더 압박해도 크게 반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다만 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완전히 믿은 것만도 아니라는 증거도 있다. 서해 발사장 재건이 하노이 정상회담을 10여일 앞두고 시작된 점이 이를 방증한다. 국정원의 국회 보고대로 회담이 성공하면 멋지게 폭파할 수도 있었겠지만 회담이 실패하면 빠르게 반응하려는 준비의 측면도 있었다. 회담 결렬 뒤 머뭇거리는 자체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이 고민한다는 오판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 신속하고 단호한 반발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미국에 본때를 보이겠다는 태세다.

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노이 회담을 낙관하면서 북한으로선 대단히 파격적인 영변 핵단지 전체 시설의 폐기를 제안하는 등 나름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내년말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협상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북한의 기대를 외면한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의 '배신' 동기가 미 국내정치적 이유라는 평가가 확산하면서 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체제의 명운을 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거래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미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되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가능성이 역대 다른 대통령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믿을 수 있는 협상 파트너로 생각하는지 여부와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과 맺은 약속을 미국이 지킬 것이라는 보장이 약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해도 완전히 믿기가 어려울 형편인데 낙선하고 미국의 정권이 바뀐다면 상황은 더욱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은 상당기간 미국을 사거리로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한편 싱가포르 회담에서 하노이 회담을 거쳐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는 과정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역학관계를 넘어 서방과 북한의 세계관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선 싱가포르 합의에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관철한 북한의 입장이 하노이 회담에서도 여전히 유지됐다. 북한이 영변 핵단지 전체의 폐기를 카드로 내놓은 것은 파격적이지만 이는 과거와 미래의 핵 일부를 폐기하겠다는 것일 뿐 현재 보유한 핵과 핵개발 능력까지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핵과 미래핵을 포기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북한이 내놓은 것이 '한반도 비핵화'인 것이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돼 있으나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 나아가 주일미군 핵무기 철수까지를 함의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미국과 북한이 사실상 동맹관계를 맺는 정도로 친밀해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북한의 핵개발을 일종의 '국제범죄'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핵비확산조약(NPT)을 위반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를 보상하면 안된다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1994년 제네바 핵합의가 결국 파기된 것은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고 막대한 중유를 매년 지원하는 합의가 과도한 것이라고 보는 공화당이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2005년 체결된 9.19공동성명(6자회담 결과)과 2012년 2.29합의도 북한에 대한 보상을 전제하고 있으나 이 합의는 북한에 대한 보상을 명확히 명시하지 않거나 충분한 수준이 아니어서 북한이 파기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방은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가 갈수록 조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방이 '범죄자'를 달래기보다 처벌하는 쪽으로 경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북한은 영변 핵단지 폐기의 대가로 유엔 안보리 제재 11개중 민생경제와 관련한 5개 항목을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사실상 제재를 전면 해제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 거부했다.

북한이 요구한 5개 항목은 돈으로 따지면 연간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미만이라고 한다. 제재 이전에 석탄과 수산물, 의류, 노동력 수출 등을 통해 북한이 벌어들인 돈을 토대로 계산한 금액이다. 북한이 얻을 경제적 실익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이다. 그보다 상징적 의미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

김위원장이 이번 회담을 낙관했던 것은 이같은 계산법을 따랐을 것이다. 연간 15억달러 정도의 돈을 벌자고 수십년 막대한 투자로 구축한 영변 핵단지를 내놓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따라서 북한이 충분히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음을 미국도 납득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위원장을 친구로 생각하는 한 상징적 의미 정도는 배려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최선희 부상이 회담 결렬 뒤 기자회견에서 "김위원장이 미국의 계산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말한 대목은 이런 점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에 영변 핵단지와 민생제재 철회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거절한 미국이 미사일과 현재 보유한 핵폭탄, 은닉된 우라늄 농축시설 등까지 포기하는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울 것이다. 이마저도 미 대선이 끝난 뒤인 2021년까지는 기다릴 것이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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