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전선 대공세에 앞서 벌어진 서전(Prelude).
2019년 5월 1일자
베네수엘라 정국 시계제로
과이도, 軍 이끌고 마두로 압박
정부군 장갑차 시위대 돌진
1명 사망 100여명 부상
美볼턴 "모든 옵션 고려중"
폼페이오 "마두로 쿠바 망명"
마두로 "미친 소리" 일축
[기사 전문]
베네수엘라가 '일촉즉발'의 무력 충돌 위기에 휩싸였다. 정권 교체 선봉에 선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겠다며 마지막 압박에 나섰다. 과이도 의장이 군사력을 동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마두로 정권은 군사 봉기 시도를 모두 진압했으며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하지만 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과이도 의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의 '라 카를로타' 공군기지 인근에서 무장 군인 수십 명과 함께 찍어 트위터에 공개한 동영상에서 "자유작전이 마지막 단계에 왔다"고 외쳤다. 군인들은 과이도 측 지지를 나타내는 푸른 띠를 팔뚝에 둘렀다. 과이도 의장은 "주요 군은 내 편에 섰다"며 "우리는 군인들과 함께 나가 거리를 끝까지 점령할 것"이라고 사실상 무장봉기를 선언했다.
마두로 정권이 자행해 온 정치 탄압의 상징적 인물인 레오폴도 로페스 전 카라카스시장도 그의 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로페스 전 시장은 과이도 의장이 소속된 '민중의지당' 대표를 지낸 인물이자 야권 대선 주자 1순위로 꼽힌다. 그는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군인들이 자신을 가택연금에서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호응해 반정부 시위대 수천 명이 다시 거리로 몰려 나왔다. 정부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정부군 장갑차도 동원했다. 특히 정부군 장갑차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면서 시위에 참가한 시민이 장갑차에 깔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격렬한 진압 과정에서 1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독재 정권에 대항해 과이도 의장이 지난 1월 말 과도정부 수립을 선언한 뒤 석 달 이상 '한 나라 두 대통령' 상태가 지속돼 왔다. 과이도 진영은 미국과 브라질 등 남미 다수 국가의 지지를 얻어냈으나 군부를 틀어쥔 마두로 대통령은 과이도 의장의 면책특권을 박탈한 뒤 수사에 착수하며 역공에 나서던 참이었다. 결국 체포 위기에 몰린 과이도 의장이 평화적 방법을 포기하고 군사적 봉기라는 마지막 반격에 나선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과 그들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쿠바를 향해 "베네수엘라 사태 개입을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고강도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백악관 앞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금이 베네수엘라 국민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결정적 순간"이라며 "이것은 쿠데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미 과이도 의장이 베네수엘라의 합법적 수반인 만큼 쿠데타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이어 "평화적 정권 이양을 선호하지만 모든 선택지는 테이블 위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군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미군이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일단 미국은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 등 마두로 정권 내부 인사에 대해 '전향'을 압박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에 협조 의사를 보였던 마누엘 피게라 장군(정보경찰 책임자)은 마두로 대통령이 경질하자 은신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CNN과 인터뷰하면서 마두로 대통령이 이날 아침 쿠바 망명을 준비했으나 러시아가 개입해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는 활주로에 비행기까지 대기해 둔 상태였고 오늘 아침 떠날 준비가 돼 있었다"며 러시아가 망명을 막아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장 그 비행기를 출발시켜라"며 마두로 대통령을 압박했다. 베네수엘라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캐나다와 중남미 주요 국가들이 발족한 리마그룹은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한 과이도의 노력을 지지한다"며 긴급회의를 소집했다고 CBC가 보도했다.
이에 대해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저녁 TV에 나와 "미국이 부추긴 멍청하고 실패한 쿠데타"라며 자신이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주장을 '미친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어 "과이도 편에 선 군인은 20명 남짓"이라면서 이번 사태의 의미를 축소했다. 호르헤 아레아사 베네수엘라 외무장관은 이날 로이터통신에 "과이도가 워싱턴의 명령에 따라 작전을 벌였다"며 "군부의 (자발적) 쿠데타 시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는 이날 외교부 명의로 성명을 내고 "베네수엘라의 급진적인 야권이 폭력적인 수단으로 회귀했다"며 "그들은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고 공공질서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마리아 자카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 베네수엘라군 사기를 꺾기 위해 가짜뉴스로 정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CNN에 밝혔다. 쿠바와 볼리비아 등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주변국들도 과이도 의장 발언을 '쿠데타'로 규정하면서 강력 비판했다. 중재자를 자처해 온 멕시코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군부 간 대규모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향후 며칠이 베네수엘라 내분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WP는 "과이도가 위험이 큰 도박에 나섰다"며 "아직까지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군사 봉기 시도는 지금까지 마두로 정권에 지지를 보였던 군부에서도 이탈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AFP통신에 따르면 브라질 정부는 이날 베네수엘라 주재 자국 대사관을 통해 베네수엘라 군인 25명이 망명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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